노벨상을 만든 스카치테이프: 그래핀이 발견된 황당하고 위대한 역사

책상 위를 굴러다니는 스카치테이프를 볼 때마다 저는 참 묘한 기분이 듭니다. 우리는 보통 종이를 붙이거나 옷에 묻은 먼지를 떼어낼 때 이 투명한 테이프를 쓰곤 하죠. 그런데 이 흔하고 평범한 문방구 아이템 하나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과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다담랩에서 기술 관련 자료를 쉽게 풀어서 정리하다 보면, 때로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과학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마주하게 됩니다. 오늘은 수조 원대의 미래 산업을 열어젖힌 꿈의 신소재 ‘그래핀’이 도대체 어떻게 세상에 처음 등장하게 되었는지, 그 황당하고도 위대한 스카치테이프 실험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던 ‘불가능한’ 유령 물질

2004년 이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물리학자들은 ‘2차원 물질은 현실에 존재할 수 없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1편에서 그래핀은 연필심(흑연)에서 딱 한 층만 떼어낸 원자 두께의 얇은 막이라고 설명해 드렸죠. 당시 과학계의 상식으로는 이렇게 얇은 막 형태의 물질은 열역학적으로 너무 불안정해서, 만들어지는 즉시 스스로 둥글게 말려버리거나 뭉쳐서 파괴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과학자가 첨단 장비와 복잡한 화학 기법을 동원해 흑연을 아주 얇게 깎아내려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의 쓴맛을 봐야 했습니다. 그래핀은 그저 칠판 위에 적힌 수학 공식과 이론 속에서만 존재하는 ‘유령 물질’ 취급을 받았습니다.

금요일 밤의 엉뚱한 장난이 만든 기적

이 불가능의 벽을 깬 사람들은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의 안드레 가임(Andre Geim) 교수와 그의 제자 콘스탄틴 노보셀로프(Konstantin Novoselov) 연구원이었습니다. 이들의 연구실에는 아주 독특한 전통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금요일 밤의 장난(Friday Night Experiments)’이었습니다.

금요일 일과가 끝나면 연구 지원금이나 논문 실적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엉뚱하고 재미있는 실험을 마음껏 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살아있는 개구리를 자석으로 공중에 띄우는 실험을 하기도 했던 이들은, 어느 금요일 밤 흑연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연구실 구석에 굴러다니던 평범한 스카치테이프를 집어 들었습니다.

스카치테이프로 흑연의 껍질을 벗기다

실험 방법은 누구나 집에서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허무할 정도로 간단했습니다.

  1. 스카치테이프의 끈적이는 면에 흑연 가루(연필심)를 올려놓고 꾹 누릅니다.
  2. 테이프를 반으로 접었다가 쫙 떼어냅니다. 그러면 흑연이 쪼개지면서 두께가 얇아지겠죠.
  3. 이 과정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합니다.
  4. 테이프에 남은 아주 희미하고 얇은 찌꺼기를 실리콘 기판 위에 옮겨 붙인 후 현미경으로 관찰합니다.

안드레 가임과 노보셀로프는 이 단순 무식한 ‘찍어내기’ 반복을 통해 마침내 탄소 원자 단 한 층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2차원 평면, 즉 최초의 분리된 ‘그래핀’을 눈으로 확인하는 데 성공합니다. 수백억 원짜리 첨단 장비로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천 원짜리 스카치테이프가 해낸 순간이었습니다. 이 기발하고도 단순한 공로를 인정받아 두 사람은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거머쥐게 됩니다. 학계에서는 이 방법을 가리켜 우아한 표현으로 ‘기계적 박리법’이라고 부릅니다.

테이프의 한계, 그리고 상용화를 향한 과제

제가 이 스카치테이프 일화를 처음 접했을 때, 호기심에 4B 연필과 테이프를 꺼내서 직접 수십 번 접었다 뗐다를 반복해 본 적이 있습니다. 눈이 빠져라 불빛에 비춰보았지만 제 눈에는 그저 시커먼 테이프 쓰레기만 보일 뿐이었죠. 이처럼 기계적 박리법은 그래핀의 존재를 최초로 증명하고 그 성질을 연구하는 데는 완벽했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테이프로 벗겨낸 그래핀은 그 크기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너무나 작고, 우연에 기대어 만들어지기 때문에 대량 생산이 불가능합니다. 스마트폰 화면이나 대형 배터리에 쓰려면 넓은 면적의 그래핀을 공장에서 붕어빵 찍어내듯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기업들은 테이프 대신, 구리판 위에 가스를 주입해 고온에서 탄소를 얇게 코팅하는 ‘화학 기상 증착법(CVD)’ 등 완전히 다른 첨단 공정을 사용하여 그래핀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연구실의 스카치테이프를 쓰지 않지만, 편견에 얽매이지 않은 금요일 밤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인류의 미래 소재를 발견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핵심 요약]

  • 2004년 이전까지 원자 한 층 두께의 2차원 물질은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여겨졌다.
  • 안드레 가임과 노보셀로프는 스카치테이프에 흑연을 붙였다 떼기를 반복하여 최초의 그래핀 분리에 성공했다.
  • 이 ‘기계적 박리법’은 대량 생산에는 부적합하여, 현재 산업계는 화학 공정을 이용한 대면적 생산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강철보다 200배 강하다고? 그래핀의 경이로운 물리적 특성 파헤치기”를 통해 이 얇은 막이 도대체 얼마나 엄청난 능력치를 숨기고 있는지 하나씩 해부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일상 속 평범한 물건이 이렇게 세상을 바꿀 엄청난 발견의 도구가 된 또 다른 사례를 알고 계신가요?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댓글로 편하게 나누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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